중국이라는 해일

나의 중국 첫 여행은 10여 년 전에 중국을 적어도 스무 번쯤은 드나들었던 분들과 함께였다. 역사학자와 동양화가, 중국전문가들과 함께였다. 그러다 보니 자연 들을 얘기도 많고 깨달음도 많았던 기회였다. 중국 대부분을 안 가본 데가 없을 정도로 중국 왕이 빈번했던 분들과 동행이다 보니 베이징도 잘 모르는 처지에 대뜸 중국 서쪽 네이멍구 쪽이 첫 중국 여행지였다. 한 며칠은 다양한 음식에 곁들여 나오는 50도를 넘나드는 중국 술을 맛보는 일도 신기했고, 도대체 어떻게 저기에 절을 세웠을까 싶은 곳에 아름답고도 기이하게 세워져 있는 오래된 사찰을 보는 눈의 즐거움도 컸으며, 웬만한 가이드는 할 말이 없을 정도로 식견 높은 분들의 쏟아지는 설명을 듣고 있는 귀도 항상 열려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후허하오터(呼和浩特)라는, 우리말로 풀면 푸른 성이라는 이름을 가진 도시에서 다음 목적지로 가기 위해 버스를 탔다. 어디를 지나가는 길이었는지는 정확히 기억이 나지 않는다. 어느 분이 차창 바깥으로 보이는 산을 가리키며 저곳이 태산이라고 할 적엔 "태산이 높다하되 하늘 아래 뫼"라더니 별로 높지 않네, 그런 생각도 했던 것 같다. 차창 바깥을 다보니 푸른 옥수수 밭이 펼쳐졌다. 옥수수 밭이구나… 생각하다가 졸았다. 깨어나 차창 바깥을 다보니 그때까지도 옥수수 밭이 이어졌다. 아직도 옥수수 밭이네… 생각하며 책을 읽었던 것도 같다. 덜컹거리는 버스 안에서 책을 읽는 일이 시력에 무지 안 좋다는 것을 모르는 바도 아니었으나 달리 할 일이 없었다. 얼마나 책을 읽다가 다시 차창 바깥을 다보니 그때도 옥수수 밭이었다. 옥수수 밭이 참 넓기도 하구나… 생각하며 졸다가 책을 읽기를 반복하다가 어느 순간 나는 등을 세웠다. 그렇게 몇 시간이 흐른 것 같은데 차창 바깥으론 계속 옥수수 밭이 이어지고 있질 않은가. '옥수수 밭이네…'가 아니라 '아직도 옥수수 밭이야?'라고 바뀌면서 나도 모르게 야릇한 두려움이 밀려들었다. 저 옥수수를 누가 다 심었단 말인가 싶은 의문과 함께 끝없는 바다처럼 이어지고 이어지는 그 대량생산에 기가 질렸다고나 할까.강원도에서 가장 많이 생산되는 것이 옥수수이나 자동차가 아니라 자전거로라도 10분을 달릴 수 있을 만큼 이어지는 옥수수 밭을 본 적이 있었던가? 이래서 대륙이라고 하는 건가 싶으며 은근히 중국이 무서워졌다. 말로만 듣던 대륙을 끝도 없이 이어지는 옥수수 밭으로 인해 실감하는 순간이었다. 한번 의식이 그쪽으로 맞춰지니 귀에는 계속 대륙적인 얘기만 들렸다. 나무 수령은 걸핏하면 1000년이 되었다 하고, 흔하게 마주치는 건축물인데도 2000년이 되었다 했다. 1000년 2000년이 숱해서 나중에는 3000년을 되었다 해야 '그래?' 하며 올려다보게 되는 지경에 이르렀다. 아무도 살지 않는 땅, 버려둔 것 같은 산이며 폐허가 어찌나 넓고 광활하게 펼쳐지는지 아, 여기에서는 정말 숨어 살아도 아무도 모르겠구나 싶었다. 여행에서 돌아와서도 꽤 오랫동안 중국 대륙의 무게에 짓눌려 있었다. 그게 10여 년 전 일이었다. 그 사이 나 또한 중국을 몇 차례 더 드나들었다. 세월과 함께 첫 여행에서 기를 죽였던 대륙적인 것에 꽤 단련이 되었다고 여겼다. 그러다가 근자에 중국 소설 몇 편을 동시에 읽게 되었다. 서점 판매대에 일본 소설이 한국 소설보다 더 많이 진열되기 시작한 지는 꽤 되었으며 최근엔 독자들을 일본 소설에 빼앗긴 책임이 작가들에게 있다고 책망을 들어도 크게 반응하지 않고 무덤덤했던 나였는데 쑤퉁이나 모옌이나 위화의 중국 소설을 읽는 동안 묘한 긴장을 느꼈다. 10여 년 전 여행길에 몇 시간째 끝도 없이 이어지던 옥수수 밭을 보게 되었을 때 놀라움과 함께 아, 중국이 제대로 성장하기 시작하면 우리가 받는 타격이 꽤 크겠구나 싶었던 두려움 같은 것이 밀려들었다. 물론 시각과는 달리 중국 대륙을 하나의 큰 시장으로 보는 시각도 있다. 실제로 어떤 분야에서는 중국 대륙은 거대한 시장 역할을 하기도 한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읽은 중국 소설들을 쓴 작가들은 태어나면서부터 끝없는 이야기들이 재되어 있는 대륙을 자산으로 지닌 축복받은 자들로 다가왔다. 물론 그들이 그 자산으로만 이루어진 존재들은 아닌 것은 당연하다. 튼튼한 토대에 실력까지 갖추었으니 부럽고 두려웠을 것이다. 그들과 경쟁해야 한다는 게 무참하게 느껴지기까지 했다. 나의 이 느낌이 과연 문학에서만일까? 중국이라는 잠복적 해일에 덮이지 않으려면 어찌해야 할지를 대비하는 일이 문화뿐 아니라 모든 분야의 큰 과제처럼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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