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토(京都)의 역사

교토(京都)라는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미야코(수도)의 뜻을 나타내고 있다. 일본에 처음으로 사람이 살았다는 증거는 BC 10000년경부터 나타나지만 6세기 전까지 이 지역의 인간의 활동에 대해서는 거의 알려지지 않았다. 교토에는 6,7세기부터 한반도와 중국 대륙에서 도래인들이 정착하였다. 8세기에 강력한 불교 신자들이 황실의 직무에 관여하게 되었고 천황은 불교의 영향력으로부터 멀리 떨어진 곳으로 수도를 이전하였다. 간무 천황은 당시 야마시로 국의 가도노 군 우다 촌을 수도로 선택하였다.

794년 간무 천황은 나라(奈良)에서 이곳으로 수도를 옮겨 헤이안쿄(平安京)라 하였고 일본의 역사에서 헤이안 시대가 시작되었다. 교토는 1868년 메이지 유신 때 수도를 에도로 이전하기까지 일본의 수도로 남아있었다.

 

가마쿠라 시대, 무로마치 시대를 거쳐 꾸준히 성장하던 교토는 1467년 오닌의 난으로 상당 부분이 불타 없어졌다. 특히 무로마치 중기에는 아시카가 요시마사의 별장이 있던 교토의 히가시야마의 이름을 딴 히가시야마문화의 발전으로 노, 다도, 화도, 렌가, 정원 등이 발달하였다.

 

1603년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에도 막부를 세우고 교토 소사대(京都所司代)를 두어 교토를 다스렸다. 교토는 에도, 오사카와 함께 3도(三都)라 불렸다. 1869년 메이지 정부가 도쿄로 천도함에 따라 교토는 1000년 이상 이어오던 수도로서의 지위를 상실하고 문화 도시로 그 성격이 바뀌었다. 그러나 새 천황의 정식 즉위식은 계속 교토에서 거행되었다.

 

미국은 2차 대전 말에 원자 폭탄의 목표로 일본의 정신적 중심이었던 교토를 고려하였다. 그러나 루즈벨트와 트루먼 정부의 국방 장관 헨리 스팀슨은 유서깊은 고대 도시를 파괴하는 것에 반대하여 공격 목표를 교토에서 나가사키로 수정하였고 교토는 그 피해를 면하게 되었다.

 

결과적으로 교토는 마치야로 불리는 전통적인 주택 같은 전쟁 이전의 건물들이 여전히 풍부하게 남아있는 일본의 몇 안되는 도시 중 하나가 되었다. 그러나 현대화로 교토 역 복합단지와 같은 새로운 건축물들이 세워지면서 전통적인 교토는 계속 파괴되었다. 1956년 9월 1일에 일본에서 처음으로 정령지정도시로 지정되었다. 1997년에 교토는 온실 가스 배출의 감축에 대한 회의인 교토 의정서를 개최하였다.

 

교토는 도시가 세워진 이래 잠시 동안 일본에서 가장 큰 도시였으나 16세기 말에 오사카와 에도에 추월당했다. 전쟁 이전에 교토는 고베, 나고야와 가장 큰 도시의 4위, 5위 자리를 교환했다. 1947년에 3위로 복귀하였으나 이후 다시 떨어졌다. 1960년대에 5위로 다시 떨어졌고 1990년대에는 7위까지 떨어졌다. 만약 현재의 추세가 계속된다면 후쿠오카, 가와사키에도 밀려 9위로 떨어지게 된다.

앞 페이지:교토의 문화와 경재

뒤 페이지:당을 향한 화교들의 열창

관련 글

 무석 탐색

 무석 탐색

  여행 정보

COPYRIGHT @ 2007-2008  무석 관광 협회
TEL:86-510-8505258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