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경,서안,계림여행기-계림

중국 여행기 23 (관암동굴)

돌로 잘 단장된 길을 걷는 외에 대나무로 만든 가마를 타고 가는 방법과 둘이 타고 조종하여 가는 모노레일과 입구까지 가는 말이 있었다. 어느 것이나 20 달러를 내라고 하였다. 돈도 비쌌지만 2 km 정도 걷는 것은 운동도 되고 주변의 경치도 볼 수 있으므로 쇳소리를 내며 달리는 모노레일 옆으로 난 길을 따라 쉬엄쉬엄 걸었다. 1 km 정도를 걸은 뒤 약간 오르막이 나왔으나 경사가 완만하여 쉽게 오를 수 있었다. 동굴 입구 매점은 시간이 일러서인지 아직 사람들이 보이지를 않고 대숲 사이로 새소리가 들리는 데 박새와 찌르레기는 우리 나라 새들과 똑 같았다. 관암동굴에 대한 전설을 대강 듣고 동굴 속으로 들어갔다. 여러 가지 석순과 종유석이 늘어진 것은 우리의 환선굴이나 고수동굴과 비슷하였으나 규모가 크고 안이 매우 넓었다. 10 여 분을 걸어 들어가서 끝이 아스라한 절벽에 다다라 절벽을 돌아 내려가니 9 층 높이의 엘리베이터가 설치되어 있었다. 동굴 속에 엘리베이터라니? 그러나 가이드는 곧 우리를 기차역으로 안내하였다. 플랫폼에는 고장난 기차가 서있고 한 동안 기다려서 반대쪽에서 소리를 내고 달려온 코끼리 열차 같은 것에  둘씩 짝을 지어 타고 우리 뒤쪽으로는 시끄러운 중국 사람들이 가득 탔다. 열차는 곧 출발하여 종유석에 머리를 부딪칠 까 보아 조심하며 주위를 둘러보니 제법 운치가 있어서 이렇게 관광하는 것도 매력이 있었다. 열차에서 내린 지점에는 넓은 광장이 있고 형형색색의 중국 소수민족 복장을 한 아가씨들이 함께 사진을 찍어주고 돈을 받았다. 이곳을 지나니 찰랑거리는 물소리가 들리고 깊이를 알 수 없는 동굴 속 호수가 나왔다. 호수에는 사공 둘이 앞뒤에 서서 노를 저어 전진하는 조그만 나룻배가 있다가 사람들을 대여섯명씩 태우고 호수를 따라 깜깜한 동굴 속으로 저어나가는 데 어둠에 익숙하고 호흡이 잘 맞아 마주 오는 배는 물론 튀어나온 바위 하나 건드리지 않고 잘 나아갔다. 각자 하나씩 나눠주는 플래시로 주위를 비추며 구경을 하고 물 속을 비춰보니 바닥이 보이지 않았다. 10 여 분이 지나 나루터에 도착하여 내렸다. 여기에도 조그만 기념품 가게들이 있는데 물건을 들고 따라 다니며 사라고 졸랐다. 옥으로 만든 용이 여의주를 물고 승천하는 조각품을 들고 5 만원을 내라고 하였다. 장난 삼아 만원이라고 부르니 당장 OK 사인이 떨어지며 포장을 하는 것이었다. 아차 하였으나 할 수없이 만원 짜리 한 장을 주었는데 뒤따라오던 사람들이 5 천원 하고 흥정을 붙여보았으나 그 값으로는 팔 수 없다고 하였다. 결국 한 사람이 만원을 주고 같은 것을 사서 바가지 쓴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중에 호텔에 가서 자세히 보니 옥으로 조각한 것은 아닌 것 같고 틀에 부어 만든 것 같은 데 눈으로 구별이 잘 되지 않아 진품처럼 우리 집 전화기 옆에 놓아두었다.)
배가 닿은 지점에서 내려가는 모노레일을 탔다. 2 인 승이나 덩치가 큰 덕으로 혼자 조종간을 잡고 달리는데 밀면 가고 당기면 서는 간단한 조정장치를 힘껏 밀어보니 요란한 소리를 내며 잘 달렸다.

중국 여행기 24 (도자기 공장)

모노레일 주차장에는 상가가 밀집해 있는 데 납작한 차돌에 그린 것이 분명한 말이나 닭무늬를 넣은 것을 사라고 하였다. 손으로 문질러도 물에 씻어도 지워지지 않아 어리석은 사람은 진짜 수석으로 믿고 살 만하였다. 버스에 올라 시내로 점심을 먹으러 들어가는 데 모자라는 잠이 쏟아져서 창밖을 보다 말다 하며 졸다가 잠을 깨니 버스는 벌써 시내에 들어와 식당 옆 공터에 주차하러 들어가는 중이었다. 차에서 내려 도자기를 만드는 공장은 시간이 없어 구경을 못하고 점심만 먹는다고 하였다. 보기보다 마당이 꽤 넓고 가꾸지는 않았지만 부잣집 정원이었는지 동그란 월문도 나오고 조그만 연못에 예쁜 다리까지 있었다. 쌀밥과 김치가 나오고 계림의 명물 쌀 국수가 나왔건만 밥은 풀기가 없어 불면 날아갈 지경이고 그릇에 옮기다가 태반은 식탁 위에 흘러버려서 난감하였다. 거기다가 김치는 시늉만 낸 소금절이이고 쌀 국수는 빛깔만 먹음직스러울 뿐 도저히 먹을 수가 없었다. 식탁 옆에는 클린턴이 방문하여 찍은 사진이 커다랗게 확대되어 걸려있고 휘갈겨 쓴 초서 대련이 마주보고 있는데 어찌나 흘려 썼는지 글자는 물론 몇 자인지 세기도 힘들었다.
그래도 음식 가짓수가 많아 대충대충 입에 맞는 것으로 골라 먹고 나오는 데 외팔이 사나이가 보자기에 어린아이를 업고는 동냥을 달라고 조르고 그 옆에서 붉은 상자에 여러 가지 크기와 모양의 붓을 대여섯자루 넣어 가지고는 한국돈 만원하고 호객을 하였다. 살 생각이 없어 머리를 저었더니 두 통에 만원, 세 통에 만원하고 값이 내리더니 급기야는 6 통에 작은 상자 여섯 개를 더 얹어 만원에 가지라고 하였다. 수공은 물론 재료값도 안되겠다 싶은데 버스에 올라 있으니 창문을 두드리며 가방에 있는 것을 통째로 꺼내어 모두 만원이라고 하였다. 대나무 접는 부채도 10 개 넘게 만원을 부르는 데 아무리 인건비가 싸고 재료값이 저렴하다 하더라도 저걸 만들자면 며칠은 걸릴 텐데 만든 사람에 파는 사람의 이익까지 생각하면 원가가 도대체 얼마일까 짐작이 되지 않는다. 참깨나 술을 구하려는 사람이 있어 일부러 어느 가게 앞에 차를 세우고 물건을 돌아보는 데 술의 종류가 너무 많아 이름을 읽는데도 한참 걸렸다. 깨를 우리 나라 공항의 통관 최고치 5 kg 씩 담아 파는 데 잘못 사갔다가는 좋은 소리를 듣지 못할까봐 살 마음이 없었다. 상점을 나와 시내에 있는 상비산 공원으로 갔다. 상비산(象鼻山)은 이름 그대로 코끼리의 코처럼 생긴 바위가 있는 공원인데 중심지에 있어 그런지 사람이 많았다. 나무에 종이를 붙여 코끼리와 기린을 만들어 놓고 복(福)자를 거꾸로 붙여 놓아 관리인에게 뒤집혔다고 하니 무슨 소리인지 알아듣지를 못하였다. 가이드에게 물은 즉 복을 바로 세워두면 날아가 버리기 때문에 달아나지 못하도록 뒤집어 세운다는 것이었다. 모르면 잠자코 있는 건데 개코도 모르면서 ......하마터면 망신당할 뻔하였다. 공원 입구에는 코바늘로 실내용 슬리퍼를 직접 떠서 파는 아이들이 몇 있었는데 솜씨가 빠르고 정확하였다.

중국 여행기 25 (상비산 공원)

공원 초입에는 어깨에 원숭이를 맨 사나이가 태극기와 대한민국 만세라고 쓴 깃발을 들고 원숭이와 같이 사진을 찍어주며 돈을 받았다. 원숭이의 재롱을 보다가 다리를 건너 강변도로를 따라 걷는데 아직 강물이 맑고 깨끗하여 곳곳에 낚시를 드리우고 고기를 낚는 사람이 있었다. 어떤 걸 잡나하고 살폈더니 길이 2-3 m 쯤 되는 장대 끝에 플라이 낚시 릴 비슷한 걸 달고 미끼로는 뜰 채로 잡은 벌레를 꿰어 쓰는데 바늘이 그야말로 코딱지만 한 것이 잘 보이지도 않았다. 잡은 고기는 송사리를 겨우 면한 빙어 만한 이름 모를 고기였는데 이걸 낚시라고 여러 명이 둘러서서 고기를 잡고 그 보다 많은 사람들이 구경을 하고 있었다. 조그만 동굴 같은 곳을 지나 사진을 찍고 누군가가 저쪽 산에서 활을 쏘아 바위에 구멍이 났다는 과장이 심한 전설 이야기를 들었다.
시멘트 구조물로 된 징검다리를 건너서 맞은 편 강가에 다다르니 뗏목 같은 엉성한 배에다 대나무로 의자를 만들어 4 개를 나란히 놓은 배가 여러 척 떠 있고 사공은 나이가 4 - 50 은 되어 보이는 늙은 여자들이었다. 가이드가 뭐라고 흥정을 하더니 1 인당 1 달러씩을 내고 배에 타라고 하였다. 뱃전에 물이 찰랑거리는 뗏목을 타고 강 가운데로 뱃놀이를 하였으나 특별한 흥취를 느낄 수는 없었다.
서로 사진들을 찍고 배에서 내려 다시 버스에 올랐다.
본래 첩채산에 가려고 하였으나 주위 경관을 보는 것은 복파산이 낫고 여기서도 첩채산이 잘 보이므로 복파산에 오르기로 하였다.
말이 산이지 높이가 50 m 도 되지 않는 조그만 봉우리였다.
공원의 입구에는 매점이 하나 있는 데 열쇠고리에 곤충을 넣어서 굳힌 플라스틱 손잡이를 연결하여 파는 것이 특이하였다.
여행용 가방도 팔았는데 지퍼와 주머니가 여럿 달리고 바퀴까지 붙은 큰 가방이 10,000 원이었다. 하나 사려고 하였으나 품질이 의심스러워 그만 두었다.
돌계단이 제법 가파르게 위로 치솟아 운동이 부족한 사람들은 꼭대기까지 10 여분 오르는 거리를 여러 번 쉬고 올라왔다. 산의 정상에는 20 여 평되는 평지가 있어 계림시내를 한 눈에 조망하기에 좋았다. 옆에서 보는 산도 멋있었지만 내려다보는 봉우리도 참으로 신비하고 멀리 겹친 산의 그림자는 더욱 환상적이었다.
10 여분 시간을 보내다가 시내로 내려와서 소수민족의 박물관이 있는 곳으로 갔다.
시내 한 구석에 있는 박물관에 버스가 닿자 제일 먼저 달려온 사람들은 장애인들이었다. 그것도 두 팔이 없거나 하반신이 없는 불구자들이어서 보기에도 끔찍하였다.
붉은 완장을 찬 경비들이 삼엄한 분위기를 연출하는 정문을 통과하자 조금 낡은 3 층 건물이 나왔다. 몸이 호리호리한 조선족 처녀가 우리를 안내해서 2 층으로 올라가는데 말솜씨가 너무도 막힘 없이 유창하여 변사가 대사를 외우는 듯하였다.


중국 여행기 26 (소수민족 박물관)

2 층에는 중국 각지에 흩어져 사는 50 여 부족들의 생활모습을 모형으로 의상으로
전시해 두었는데 자세히 살펴볼 겨를이 없도록 재촉하여 주마간산으로 지나갔다.
앞에서 재빠르게 설명을 하고 다음 코너로 가는 데 도구나 의상을 설명한 글도 읽을 여가가 없었다. 왜 이렇게 사람을 몰아가나 하였더니 결국 아래층에 있는 쇼핑센터가 우리의 최종 목적지였다. 가게가 크고 물건의 종류도 많은 게 구경할 것은 있었으나 살 것은 없었다. 한 쪽 코너에는 뱀술을 비롯하여 진짜인지 가짜인지 의심이 들었지만 뱀과 물개의 고추 말린 것을 비롯하여 끝에 가시가 달리고 뱀이 똬리를 튼 것처럼 생긴 호랑이의 거시기도 있었다.
글씨와 그림도 있었지만 진위를 가리기 힘들고 운반이 용이하지 않아 포기하였다.
(게다가 값도 무척 비쌌다.)
한 동안 쓸데없는 시간을 보내다가 밖에 나와 노점에 가서 물건들도 사고 구경도 하였다. 그 편이 훨씬 재미나고 즐거웠다. 날이 어둑하여서야 저녁을 먹으러 갔다.
시내와 공항의 가운데쯤 되는 곳에 커다란 식당이 있고(식당마다 쇼핑센터가 붙어 있다) 먼저 온 여러 대의 버스가 들어찼고 우리 나라 사람들이 떠드는 소리도 간간이 들렸다. 식당이 굉장히 커서 여러 팀들이 한 번에 식사를 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음식은 종류에 비하여 입맛에 맞지 않아 술 만 몇 잔 비우고 가방에 숨겨둔 김치와 깻잎 통조림을 꺼내 나누어서 푸슬푸슬한 밥과 같이 먹고 김도 싸서 입에 넣었다. 버스를 타려고 내려가다 보니 쓰레기를 뒤지는 늙은 여자 거지가 하나 구부리고 앉아 무언가를 주워먹고 있었다. 정신이 이상한지 먹을 것이 없는 지 불쌍하기도 하고 식탁에 그냥 남기다시피 하고 온 음식들이 생각났다.
깨끗한 계림 공항은 어제의 모습대로 환한 불을 밝힌 채 돌아온 우리를 맞아 주었다. 짐을 부치고 공항내의 매점을 돌아보다가 오늘 시내에서 산 물건들의 값을 비교해 보니 비싼 것도 있고 싼 것도 있어서 어느 쪽이 맞는 지 갈피를 잡을 수 없었다. 오후 7 시 15 분에 출발하는 북경행 비행기를 타려고 만리장성이 그려진 붉은 표를 주고 탑승 구를 벗어나니 지난번에 탄 것과 똑같은 작은 비행기였고 손님이 제법 차서 빈자리가 잘 보이지 않았다. 이 비행기도 정한 시간보다 5 분 정도 빨리 활주로를 벗어났다. 날이 어두워 밖을 보아야 볼 것도 없고 모자라는 잠이나 자려고 자리를 찾았으나 가운데 자리라 불편하여 이륙하자 바로 맨 뒷자리로 옮기고 맥주와 기내식을 먹은 다음(어제보다는 훨씬 나았다) 1 시간쯤 잠을 잤다. 밤 9 시 55 분에 정확히 북경 공항에 도착한 비행기에서 내려 건성으로 반가워하는 가이드를 따라서 버스를 타고 호텔로 갔다. 운전사 '장따꺼' 는 그 동안 교육을 받았는지 담배도 피우지 않고 가방들을 모두 받아 실어다 주었다. 홀리데이인 호텔은 하룻밤 잔 곳이라 낯이 익고 카운터의 사무원들도 인사가 깍듯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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